시계 - 벽시계,손목시계,패션시계,탁상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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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時計 watch, clock)단어장에 추가요약
시각을 나타내거나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 .
설명
시각을 나타내거나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 넓은 뜻으로는 태양이나 항성의 위치에서 시각을 결정하는 해시계·별시계·애스트럴레이브·자오의(子午儀)·사진천정통(寫眞天頂筒) 등도 포함되지만, 일반적으로는 물이나 모래 등의 규칙적인 흐름이나 진자·템포·소리굽쇠·수정조각·원자 진동 등과 같이 똑같은 시간 간격으로 반복되는 주기현상을 이용하여 시간을 재는 장치를 말한다.


역사


시간의 분할
고대 사람들은 낮과 밤의 반복에 의해 날을 세고 달력을 만들었으며,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시간의 경과를 알았다. 최초의 시계는 1개의 막대를 땅 위에 세웠던 그노몬(gnomon)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벨리스크가 그노몬으로 쓰였고, 지침(指針)은 지축에 평행하게 기울어지도록 하여 1년 동안 그림자 길이는 변화해도 방향은 변하지 않도록 개량되었는데 이것이 해시계(sun dial)이다. 해시계는 처음에 바빌로니아·이집트에서 만들어져 차츰 동·서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해시계는 밤 동안이나 날씨가 궂은 때에는 사용할 수 없고 시간을 세분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결점을 보완하여 물방울을 이용한 물시계 클렙시드라(clepsydra;물항아리)가 고안되었다. 고대이집트에서는 이미 1년을 365일로 하는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고, BC 1550년 무렵에는 이러한 종류의 시계를 이용하여 낮과 밤을 각각 12등분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 뒤 물을 모래로 바꾼 모래시계, 불시계(양초·램프·火繩·香時計) 등이 고안되었으며, 각각의 특징에 따라 근세까지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계는 정밀도도 떨어지고 늘 해시계와 비교하면서 어떤 시간을 등분하는 보조적인 장치였다. 한국에서는 어떤 시계가 먼저 발달하였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물시계 사용에 관한 기록이 있고, 신라 때의 해시계 파편으로 보이는 유물이 경주박물관에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시각을 알리는 큰 종이 충목왕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34년 장영실(蔣英實)이 세종의 명으로 물시계의 일종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이것은 자동시보장치가 달려 있어 사람들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 시각을 알려주는 정교한 시계였다. 3단의 물통으로 짜여진 자격루의 마지막 단계에서 잣대가 물을 따라 올라가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미리 장전해 둔 쇠알이 굴러 떨어지면서 종·징·북을 울려주게 장치된 자동물시계였다. 또한 시계 이상의 정교한 천문장치를 겸한 장영실의 옥루(玉漏)가 있었다. 이 밖에도 세종 때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계가 제작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행루(行漏)라는 휴대용 물시계도 있었다. 또 해시계로는 앙부일구(仰釜日晷)·현주일구(縣珠日晷)·천평일구(天平日晷)·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앙부일구는 중국에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세종 때에 조선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여 그 뒤 널리 보급되었고 일본에까지 그 영향을 끼쳤다. 17세기 이전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뒤의 것으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앙부일구가 남아 있다. 앙부일구의 내면에는 시각선 이외에도 13줄의 위선이 그려져 있어 24절기를 나타낸다. 이러한 해시계와 물시계 외에도 세종 때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시계로 작동하게 만든 시계였다. 서양식 해시계로는 1636년(인조 14) 이천경(李天經)이 만든 대리석제의 지평일구(地平日晷)의 유물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러한 초창기의 시간측정방법들은 대개 땅 위에 세운 막대기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고 이튿날 다시 똑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의 시간이 진태양일(眞太陽日)인데, 이 진태양일 하루의 길이는 1년을 통해 많은 변화가 있다. 따라서 이 불편을 없애기 위해, 유럽에서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에 걸쳐 1년마다 평균을 내어 평균태양일을 정하고 이것을 24등분한 것을 시(hour), 시를 60등분하여 분(minute), 분을 60등분하여 초(second)로 하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1927년 수정시계가 출현하여 차츰 정밀도가 향상되자, 그때까지 최고의 정밀도를 지닌 시계였던 지구자전 속도(정밀도 ±1억분의 5)의 불규칙성이 발견되어 이것이 정확한 시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이 판명되었다. 이리하여 1960년 국제도량형회의 총회는 1초를 1900년 초시점에서 측정한 1태양년의 3155만 6925.9747분의 1이라고 정의하고 이것을 시간의 단위로 하였다(曆表時). 또한 1967년 이 총회는 그 1초에 맞추어 국제단위계(SI)의 시간 단위 <초>를 세슘 133의 바닥상태에서 2개의 초미세구조 사이의 전이(轉移)에 대한 방사 주기의 91억 9263만 1770배로 했다. 이리하여 초의 단위는 천문학적 정의에서 독립하였다. 현재 우리는 시를 시각으로서 파악하는 천체관측에서 유래하는 시계(時系;세계시·역표시)와 원자시계의 초, 즉 1958년 1월 1일 0시를 원점으로 하여 시간단위를 계속 더하여 가는 원자시(原子時)라는 2개의 시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계시계의 발전
기계시계가 발명된 것은 1300년 전후로 본다. 14세기가 되자 북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의 주요 도시는 시간을 알리는 장치가 있는 공공 시계탑을 다투어 설치하였다. 파리의 대법원에 있는 시계는 1370년 독일인 H. 비크가 프랑스의 샤를 5세를 위하여 만든 것으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시계로서 유명하다. 또 이탈리아의 G. 돈디가 제작한 천문시계, 높이 1.4m의 시계는 현존하지는 않으나 1364년에 씌어진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60년 그것의 정확한 복제품이 만들어져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의 시계구조는 무거운 추의 힘으로 기어를 회전시켜 관형탈진기(冠形脫進機)에 관성이 큰 막대템포를 물려 축의 회전을 억제하는 방식이었다. 막대템포 자체는 오늘날의 진자나 템포처럼 등시성(等時性)을 가진 진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계의 오차는 하루에 30분이나 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시계는 시계바늘이 1개뿐이었고,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시각을 알리는 것이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시계에는 글자판이 없었다. clock의 어원이 종(鐘)이듯이 일반시민은 종소리에 맞추어 생활하게 되었고, 그때까지의 부정시법(不定時法) 대신 하루를 24등분하여 시를 구분하는 정시법(定時法)이 생겼다. 이러한 공공시계가 그대로 실내에 맞는 크기로 소형화된 것은 14세기 말이었으며, 일반의 부유한 가정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16세기가 되면서 부터이다. 태엽 발명에 의해 탁상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15세기 전반이었으며 역시 이탈리아에서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시계 제조의 중심은 15세기 말, 남독일에서 조금 뒤 프랑스 블루아로 옮겨갔다. 뉘른베르크의 자물쇠공 P. 헨라인이 1510년 무렵 회중시계의 전신인 휴대시계를 만든 일은 유명하다. 태엽시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긴 상태에 따라 태엽의 힘이 크게 변동하여 시간이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발명자는 분명하지 않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기록에 보이는 균력차(均力車;fusée)와 스택프리드(stack freed) 장치가 고안되었고, 16∼17세기의 휴대시계에 이 중 어느 하나가 사용되었다. 초기의 휴대시계는 두꺼워, 목 또는 가슴에 걸었으며 시간을 알리는 장치를 갖춘 것이 많아 클록워치라 하였다. 1600년 전후에는 십자가·두개골·동물·과일·별·꽃 등 진기한 모양을 한 시계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그 후 오늘날과 같은 동그란 모양으로 정착되었다. 케이스는 귀금속이나 에나멜이 사용되었는데, 아름다운 에나멜그림 때문에 시계는 미술공예품·보석장식품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1583년 G. 갈릴레이에 의해 진자의 등시성이 발견되자 네덜란드의 과학자 C. 호이겐스는 이것을 시계에 이용하여 1657년 최초의 진자시계를 완성하였고, 1675년 템포와 소용돌이 모양의 유사(遊絲)를 조합시킨 조속기(調速機)를 발명하였다. 이 등시성을 가진 조속기의 발명은 시계의 정밀도를 높여, 고정밀도화의 길을 열었다. 한국에 기계시계가 처음 전래된 때는 1631년(인조 9)인데, 정두원(鄭斗源)이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자명종을 가지고 들어온 데서 유래한다. 당시의 자명종은 지금의 자명종과는 달리 정해진 시각에 종이 규정된 대로 울리는 그런 시계를 말하였다. 이 기계시계는 한국 시계역사에 두 갈래의 영향을 주며 시계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한 가지는 서양식 자명종을 그대로 만들려는 노력이 활발해진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자명종의 기계장치를 전통적인 자동 물시계장치와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전통적인 수력을 이용한 자동장치 대신 자명종의 기계장치를 채용한 천문시계로는 혼천시계(渾天時計)를 들 수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시계는 길이 약 120㎝, 높이 98㎝, 나비 52㎝의 나무상자 속에 설치되어 있다. 시계부분과 혼천의부분의 둘로 구성되었는데, 시계부분은 2개의 추를 운동시켜 움직이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혼천의가 움직이게 된다. 시각에 따라 시패가 창문에 나타나고 종이 시각수만큼 울리게 된다. 이 천문시계는 1669년(현종 10) 관상감의 천문학자 송이영(宋以穎)이 만든 것이다. 같은 해에 함께 천문학자로 있던 이민철(李敏哲)도 혼천시계를 만들었는데 이민철의 것은 자동수력장치를 사용한 것이었다. 서양식 자명종을 그대로 만들려는 노력으로는 1723년(경종 3) 왕명으로 만든 문신종(問辰鐘)을 들 수 있다. 낮과 밤 어느 때나 시간을 알 수 있는 이 시계는 청(淸)나라에서 진하사(陳賀使)가 가져온 것으로, 임금이 관상감에 보내 그대로 복제품을 만들도록 명한 것이었다. 17세기 전반 네덜란드의 번영 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이 영국으로 옮겨짐에 따라 시계에 관한 발명도 영국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16세기 이래 에스파냐·네덜란드·영국·프랑스 등의 해운국이 <경도(經度)의 발견>을 국가적 과제로 삼아 최고의 정밀도를 지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시계 머린크로노미터의 제작을 장려한 일도 있으며, 1704년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던 스위스인 N. 파티오가 루비에 구멍뚫는 방법을 발명함으로써 보석베어링의 채용, 17세기의 R. 훅·W. 클레망·T. 톰피온·G. 그레이엄·T. 머지 등의 탈진기에 관한 발명, 그레이엄의 수은보정진자 등 18세기에는 주요한 발명이 뒤를 이어 시계의 구조는 크게 개량되었다. 또한 기계는 소형화되고 얇게 만들어졌으며 많은 기능이 부가되었다. 19세기가 되자 차츰 공장이 설립되었고 개인에 의한 제작은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까지 세계 제일의 시계산업국이었던 영국은 1840년 무렵부터 쇠퇴했으며 대신 스위스가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에 출현한 손목시계는 제1차세계대전 후 크게 유행하였고, 1924년에는 영국의 J. 하우드에 의해 자동태엽손목시계가 시판되었다. 시계의 정밀도 향상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스위스의 C.E. 기욤이다. 기욤은 니켈철합금, 온도변화에 대하여 신축이 적은 인바(invar)와 탄성변화가 적은 엘린바의 발명으로 192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인바는 진자의 대(臺) 등에, 엘린바는 템포의 유사에 사용되어 시계의 실용정밀도를 크게 높였다. 18세기는 시계의 구조·기능에 대한 개량시대, 19세기는 제조법의 개혁·진보의 시대, 20세기는 시계산업에서 기계시계의 완성기, 그리고 혁명적인 전기·전자시계로의 전환시대가 되었다.

전기·전자시계의 발달
전기를 시계에 응용한 사람은 1830년 이탈리아 사람 참보니이고, 전기시계 발전의 길을 연 사람은 영국의 A. 베인이다. 베인은 1840년 전기신호로 자시계(子時計)를 움직이게 할 것을 제창하였고, 이듬해 기계시계의 진자를 이용하여 접점에 의해 한번 진동할 때마다 임펄스를 일으켜 자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서 히프·르무안이 전자식 진자 구동의 단독시계를, 1856년에는 스위스의 A.L. 브레게가 전기태엽시계를, 1918년 무렵 미국의 H. 워런이 교류동기(交流同期)모터를 사용한 시계를, 1927년에는 W.A. 마리슨이 수정시계, 1949년에는 H. 라이온스가 암모니아분자의 진동을 이용한 원자시계를 만들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1948년에 벨연구소의 W.H. 브래튼·W. 쇼클리·J. 바딘 등 3명에 의해 개발된 트랜지스터는 전기접점으로서도 뛰어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954년 무렵부터 시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대형시계와 병행하여 전지손목시계 연구도 계속되어 1952년 미국의 엘진사와 프랑스의 리프사가 협동하여 만든 템포식 워치의 원형이 발표되었고, 이어 템포식·소리굽쇠식의 전지손목시계가 미국·스위스·프랑스·일본 등지에서 제조되었다. 1969년에는 일본이 세계 최초의 수정손목시계를 아날로그식으로 발매하였고, 1972년에는 미국의 여러 회사가 디지털식 수정손목시계를 발표하였다. 일렉트로닉스의 급속한 진보에 따라 고밀도 집적회로를 넣어 정밀도와 기능이 뛰어나고, 작고 얇으며 값도 싸진 수정시계는 짧은 기간에 기계식으로 바뀌었다. 특히 디지털손목시계의 다기능화·저가격화의 진전은 시계의 성격을 소형정보기기로 바꾸어 수요구조를 변화시켰다.

시계의 종류
시계의 종류는 다양하고 분류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시각지시기와 시간측정기, 그리고 원진부(源振部)의 제어방식에 따른 전기·전자·기계시계의 구분 등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워치와 클록의 구분이 가장 일반적이다. 워치는 보통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사용하는 시계, 클록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위치에서 사용되는 시계, 즉 워치 이외의 시계를 말한다. 실제로는 케이스가 붙어 있지 않은 무브먼트(movement;시계의 기계부분) 상태로 거래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나라에 따라서는 무브먼트의 지름이나 두께 또는 용적에 따라 워치의 무브먼트를 구분하고 있다.

워치
회중시계·손목시계·펜던트시계·반지시계·스톱시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펜이나 라이터 등에 부착된 제품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밖의 분류법으로는 크기·석수(石數)·외장(外裝)·표시법(아날로그·디지털)·탈진기(레버워치·핀레버워치)·조속기(진자·템포·소리굽쇠·수정등) 등에 따라 나누는 방법이 있다. 기능이나 품질표시의 호칭에 따라 나누는 방법도 있는데, 크로노그래프·크로노미터·자동·캘린더부착·자명종·맹인용·방수·내충격·내자(耐磁)·야광시계 등이 그것이다.

레버워치
레버탈진기, 즉 앵커의 멈춤쇠가 보석(루비)으로 된 탈진기를 가진 워치이다.

핀레버워치
앵커의 멈춤쇠를 철핀으로 바꾼 것이며 로스코프라고도 한다.

내자시계
시계는 철부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자력선이 있는 곳에 가면 오차가 생긴다. 자기화에 의해서 큰 영향을 받는 부분이 유사인데, 오늘날의 제품은 대부분 비자성(非磁性)의 특수합금을 사용하고 있다. 특수한 것으로서는 무브먼트를 투자성(透磁性)이 높은 재료로 싸서 자력선으로부터 보호한 것이 있다. 국제적인 기준(ISO규격)에 따르면, 시계를 4800A/m의 자기장 속에 두었다가 꺼냈을 때 시험 전·후의 차가 기계식 소형시계에서 1일당 45초, 중형에서 30초, 수정시계에서 1.5초 이내인 것에만 내자(antimagnetic)라는 표시가 허용된다.

내충격손목시계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1m의 높이에서 단단한 마룻바닥에 떨어뜨려도 멎거나 큰 오차 또는 손상이 생기지 않는 손목시계에 내충격(shock-resistant)이라는 표시가 허용된다.

방수시계
내부에 물이 스며들지 않는 구조로 된 시계를 말하며, 국제적인 기준에 따르면 적어도 2bar(약 2기압)의 압력에서 5분 정도 물의 침입에 견뎌내지 못하면 방수(water resistant)라는 표시는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잠수시계는 적어도 100m의 수심에서 견뎌내어야 하며, 그 이상의 제품에 대해서도 국제적인 규격이 있다.

야광시계
어두운 곳에서 시각을 읽을 수 있도록 글자판이나 바늘에 발광도료를 바른 시계이다. 도료로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방사능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계에 사용해도 좋은 핵종(核種;삼중수소·프로메튬·라듐 등 3종에 한한다)과 그 전방사능(全放射能)의 최대허용량은 국제규격에 정해져 있다.

클록
탁상시계·궤종시계·설비시계(탑시계·공중시계)·프로그램시계·머린크로노미터 등이 있다. 탁상시계에는 롱케이스클록(통칭 그랜드파더클록)과 같이 바닥에 직접 놓는 대형 중추식(重錘式) 진자시계에서 여행용 자명종시계처럼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소형인 것까지 있다. 20세기 중엽까지 최고의 정밀도를 지닌 시계는 진자식 천문시계였다. 그러나 오늘날 천문시계는 원자시계로, 머린크로노미터는 수정시계로 대체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기·전자시계는 단독시계와, 외부의 신호에 의해서 진동주기나 지침이 제어받는 것으로 크게 나뉜다. 전자(前者)에는 진자나 템포가 직접 전자적으로 구동되는 전자시계, 기계시계의 태엽 등을 전기로 감는 전기시계 등이 속하고 후자에는 모시계(母時計)의 신호를 받고 움직이는 자시계, 교류동기시계 등이 있다.

시계의 구조
시계는 다음의 4가지 장치로 구성된다.

시간의 간격을 만드는 장치
원진부·조속기·공진기(共振器) 등으로 불리는데, 시계의 정밀도는 이 부분에 의해 거의 결정된다. 진자·템포·소리굽쇠·수정진동자·원자 등이 있다.

원진부가 결정하는 시간간격을 단위시간으로 변환시키는 장치
분·초 또는 초를 분할한 간격으로 변환한다. 기계시계에서는 탈진기를 구성하는 앵커와 이스케이프휠로 톱니바퀴의 회전속도를 규제한다. 전자시계에서는 임펄스카운터나 주파수체강기(周波數遞降器) 등이 그것이다.

표시장치와 외장
글자판과 바늘에 의한 아날로그와 로마자·숫자로 표시된 디지털이 있다.

동력장치
추·태엽·전지·교류전원 등이 있다.

시계산업
기계시계가 14세기 북부 이탈리아에 출현한 뒤 시계 제조지역은 이탈리아에서 독일남부·프랑스·네덜란드·영국·스위스로 옮겨갔으나, 고도의 기술과 숙련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후 미국·소련·일본 등이 추가된 정도로생산국은 매우 적은 수에 한정되어 있었다. 1930년대에는 스위스(워치)·독일(클록)·미국(워치와 클록)의 3개국에서 세계 시계시장의 90% 이상을 생산했고, 또한 수정시계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1970년에는 스위스·미국·프랑스·독일·소련·일본 등 6개국에서 90%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렉트로닉스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시계도 전자화라는 일대 변혁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혁신에 그치지 않고 산업구조를 바꾸었으며 생산국이 대폭적으로 바뀌었다. 주요 시계생산국들은 국제적 가격경쟁·수출마찰로 인하여 해외 현지생산체제로 바꾸고 있기 때문에 시계생산의 중심지는 이미 유럽·미국에서 아시아지역으로 옮겨지고 있다.

생산형태
크게 나누어 2가지 형이 있다. 하나는 큰 공장에서 부품부터 완성품까지를 일괄생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각 부품을 사들여 가내공업형식으로 시계를 조립하는 조립공장방식이다. 미국·러시아·일본 등 시계 생산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나라는 전자에 속하고, 스위스·독일·프랑스 등은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신제품 개발경비의 증대, 대량생산에 따른 가격저하, 마케팅, 그리고 최근 제품설계와 제조설비의 불가분적인 관계 등으로 후자에 속하는 유럽의 생산국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규모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스위스
프랑스에서의 종교 박해로 제네바로 망명한 시계기술자들이 기술을 전하여 16세기 후반에 시계산업을 성립시켰다. 그 후 쥐라산맥의 농민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시계를 조립함으로써 가내공업으로 발달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후 손목시계의 유행에 대응하여 1929년의 세계대공황 후 연방정부의 보호 아래 기업화를 단행함으로써 시계산업을 조직화하였다. 시계회의소(時計會議所) 산하에는 시계제조자연맹(FH)·시계부품제조자조합연합회(UBAH)를 두었고, 1931년에는 시계산업 최대의 콘체른, 스위스시계산업종합주식회사(ASUAG)를 설립, 시계의 주요 부품인 에보슈·템포·유사·탈진기의 제조회사를 각각 그룹화하여 통제했으며, 과잉생산방지, 외국 시계산업 발전방지책, 가격·임금의 통제, 정보수집 등을 단행하였다. 스위스는 많은 숙련근로자, 정밀도가 높은 시계용 공작기계에 의한 기술적 우월과 이 통제조직에 의해 그 후 약 40년 동안 세계 시계시장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일본·소련이 등장하여 시장점유율이 떨어졌고, 전통적인 기술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수정화(水晶化)에 뒤져 그때까지 스위스제품의 약 반을 차지하고 있던 핀레버(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워치)의 영역을 홍콩제 디지털워치에 빼앗겼으며 1985년에는 기업수 600개사, 생산량 6000만 개(1974년 9600만 개)로서 모두 융성기의 2/3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공예적인 초고급품에서는 아직 앞서는 나라가 없다

홍콩
1960년대에는 값이 싼 워치용 케이스·글자판·밴드를 생산하였고 몇 개의 회사가 주로 스위스에서 무브먼트나 부품세트를 수입해 완성품을 조립하였다. 1970년대부터 국제분업화가 시작되어 일본·스위스의 기업들이 진출하였고, 디지털워치가 출현한 뒤에는 미국기업과 결속을 강화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 생산이 급증하였으며, 1985년에는 2억 7400만 개를 수입하고 4억 개(그 가운데 70% 이상이 디지털)를 수출하는 세계 제일의 워치수출국으로 성장하였다. 디지털워치는 1972년 처음으로 미국에서 발매되어 국내에서 붐을 일으켰으나 큰 반도체기업들의 잇따른 참가로 인하여 기업간 경쟁이 격화되어, 저임금이며 노동력이 풍부한 홍콩에서 제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이 느는 반면, 미국의 제조업자는 이 홍콩의 염가에 대항하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철수해야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홍콩시계산업의 특징은 생산국으로부터 워치나 무브먼트를 수입하고 약간의 가공 또는 부가가치를 붙여(케이스 부착, 밴드 부착 등) 수출하거나 또는 조립만을 하였으며, 지역 내에서는 거의 부품을 생산하지 않았다. 연구·개발비가 필요하지 않는 조립회사로 일관했다는 점, 외장산업이 있었다는 점, 자유항의 이점을 충분히 살렸다는 점이 단기간 내에 홍콩을 세계제일의 디지털워치 생산국으로 만든 원인일 것이다. 1985년 현재 1272개사가 있다.

일본
1873년 이후 도쿄[東京(동경)]·나고야[名古屋(명고옥)] 등에서 괘종시계 제조가 시작되었다. 19세기 말에는 회중시계·탁상시계가, 1913년에는 손목시계가 제조되기 시작하여 제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호황으로 순조롭게 발전하였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으나 전후 제조기술의 급속한 진보로 품질이 좋은 중급품을 대량생산하여 1954년에는 전쟁 전의 최고생산량인 511만 개(1937)를 넘었고, 1960년대에는 제품뿐 아니라 기술을 수출하기에까지 이르렀으며,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산 시계장치가 채용된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되어 국제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다졌다. 자동손목시계 영역에서는 1965년 이후 세계생산량의 50∼60%를 차지하였고 해마다 시장점유율을 늘려갔는데 1970년대에 수정식으로 전환되면서 크게 비약하였다. 클록은 1979년에, 워치는 1980년에 스위스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생산국이 되었다. 1985년 현재 생산공장수는 61개(관련·하청공장을 합치면 300개 이상), 생산량은 2억 5800만 개이다.

한국
한국에서 현대적인 시계생산이 시작된 것은 1959년 기계시계의 조립판매부터였다.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었던 시계공업은 그 뒤 국산화율을 높여 1977년 이후에는 전자시계생산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7개의 대형업체와 50여 개의 중소업체가 기계시계와 전자시계를 생산하고 있는데, 1984년에는 생산량이 1000만 개를 초과하였고, 시계류 총수출이 1억 5000만 달러를 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는 국산시계도 고급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8년 현재 한국시계공업협회에 140여 개의 업체가 가입하고 있다. 1988년에는 5000만 개 이상을 생산하였고 수출액은 2억 6000만 달러에 달하였다.

시계시장의 현황
워치 및 클록의 수요는 연평균 4∼6% 수준으로 신장되고 있다. 최근 생산지역의 이동, 저가격품의 공급과잉으로 변화가 심해진 워치시장을 보면 생산량은 6억 4000만 개(1985)에 이르고 있다. 그 내역은 디지털수정식 51%, 아날로그수정식 27%이고, 태엽식기계시계는 22%로 줄었다. 한편 소비면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세계소비의 약 25%를 차지하지만 이 지역의 소유율이 포화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앞으로는 소형정보기기로서의 새로운 분야로의 확대, 패션성의 중시가 요구된다.



시계 - 벽시계,손목시계,패션시계,탁상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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